국회 법사위는 청문회 개최와 조희대 대법원장 등에 대한 출석 요구 근거로 「국회법」 65조 1항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국회의 위원회는 "중요한 안건의 심사"와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에 필요한 경우 "증인ㆍ감정인ㆍ참고인으로부터 증언ㆍ진술을 청취하고 증거를 채택하기 위하여 위원회 의결로 청문회를 열 수 있다."라는 조항입니다. [해당 조항 전문 글 하단 참조.]

■ 쟁점: "중요한 안건의 심사" 범위와 권력분립 원칙 위반 여부
그렇다면 과연 '재판'은 국회가 청문회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중요한 안건"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국회법」 65조 1항의 "중요한 안건"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하위 법령은 없습니다. 재판이 "중요한 안건"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명시적 판례도 찾지 못 했습니다. 결국 「국회법」 65조 1항의 "중요한 안건"에 재판 또는 재판 관련 의혹을 포함한다고 보는 것이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권력분립의 원칙과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지 여부가 판단 기준이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이 글에서는 미국 사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권력분립(separation of powers) 원칙과 사법부의 독립을 헌법적 가치로 인정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민주주의와 의회주의 역사가 길고, 사법부와 국회의 관계에 대한 더 많은 역사적 선례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기준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 대법원장이 재판과 관련해 국회 청문회 출석 요구를 받은 초유의 사태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정립하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미국 국회의 재판 관련 법관 출석 요구 - '매카시 시대'에 2번뿐

아칸소 대학 리틀 락 캠퍼스 로스쿨의 존 디피파(John DiPippa) 교수가 지난 2016년 『멤피스 대학교 로 리뷰 University of Memphis Law Review』에 기고한 에세이(essay)에 따르면, 미국 연방정부 단위에서 재판과 관련해 현직 법관에 대해 국회가 소환장(subpoena)을 발부한 일은 딱 2번 있었다고 합니다. 특기할 만한 것은 2번 모두 '매카시즘'과 국회의 권한 남용으로 악명 높은 '매카시 시대(McCarthy era)'에 벌어진 일이었다는 점이라고 디피파 교수는 지적합니다.
첫 번째 사례는 지난 1953년에 연방 하원 '비미국적 행위 위원회(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가 연방대법관인 톰 클락(Tom Clark)에게 출석을 요구한 일입니다. 클락 대법관은 민주당 트루먼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Attorney General)을 지낸 인물입니다. 공화당이 주도했던 비미국적 행위 위원회는 법무부 장관 시절에 클락 대법관이 공산주의자 스파이로 알려진 인물을 공직에 임명한 일에 책임이 있다며, 클락 대법관이 법무부 장관 시절 관여한 7건의 재판에 대한 조사를 명분으로 국회 출석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클락 대법관은 "정부를 구성하는 3개의 부(府)의 상호 독립은 우리 헌법 시스템이 기초하고 있는 기본적 원칙입니다. 사법부의 완전한 독립은 정의의 적절한 실현을 위해 필요합니다."라는 입장을 밝히며 출석을 거부했습니다.
두 번째 사례도 매카시 시대인 1953년에 벌어진 일입니다. 연방 하원 법사위 소위원회(subcommittee)는 캘리포니아주 북부 지방에 위치한 모든 연방법원 소속 판사들에게 출석을 요구하는 소환장을 발부했습니다. 해당 판사들이 검사들과 함께 국세청 공무원의 비위 의혹에 대한 대배심(grand jury)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하겠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소환장을 받은 루이스 굿맨(Louise Goodman) 판사 등은 권력분립(separation of powers) 원칙에 근거해 출석을 거부했습니다. 굿맨 판사 등은 국회에 보낸 편지에서 "헌법은 이와 같은 문제를 입법부가 검토하도록 규정하고 있지 않고, 단지 정당한 항소 법정(appellate tribunal)이 검토하도록 하고 있을 뿐입니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와 같은 사례를 통해 미국 국회가 현직 연방법관을 재판과 관련해 소환한 것은 매카시 시대에 딱 2번이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 모두 법관들은 헌법적 가치인 권력분립 원칙에 근거해 출석을 거부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 국회가 해당 법관들을 상대로 미국법상 강제집행력이 있는 소환장(subpoena)을 집행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습니다.
미국 국회의 법관 감시 절차에 대한 논문을 쓴 토드 피터슨(Todd Peterson) 조지 워싱턴 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탄핵 절차와 무관한 맥락에서 국회가 법관에게 소환장을 발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법 업무의 집행에 있어 판사가 비위를 저질렀다는 의혹은 연방법원의 독립을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사법부 안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에 대해 국회 조사관들을 배치하는 일을 정당화할 수 없다. 국회는 국회의 정치적 의지의 힘을 사법부에 가하지 않겠다고 보장할 헌법적 의무가 있고, 연방 사법부는 이에 대응해 국회의 그러한 시도에 저항할 의무가 있다."
- Todd Peterson, "Congressional Investigations of Federal Judges." 90 Iowa Law Review 1-66 (2004)
■ 주 단위에서도 1번뿐…소환장(subpoena) 무효화 돼
코네티컷주 의회는 주 대법원장이었던 설리번 판사가 후임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을 돕기 위해서 정보공개청구 소송에 대한 결정을 미뤘다는 의혹이 있다며 출석을 요구하는 소환장을 발부했습니다. 하지만 코네티컷주 법원은 주 의회의 행위는 코네티컷주 헌법의 권력분립 조항을 위반한 것이라며 소환장을 무효화했습니다. 디피파 교수는 그밖에는 현직 판사에 대해 주 의회가 소환장을 발부하는 일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어서(almost unheard of)" 유일하게 코네티컷주의 사례 한 건만 검토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 존 로버츠 美 대법원장, '재판 무관' 출석 요구도 거부

재판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최근에 미국 연방 국회가 대법원장의 출석을 요구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2023년 미국 상원 법제사법위원회가 존 로버츠(John Roberts) 연방대법원장에게 윤리 규정 개혁과 관련해 국회에 출석해 증언하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클래런스 토마스(Clarence Thomas) 대법관이 사업가로부터 여행 경비 등을 지원받은 것을 신고하지 않은 사실과 닐 고서치(Neil Gorsuch) 대법관이 재판에 관여한 특정 로펌의 CEO에게 자산을 매각했으면서도 이를 신고하지 않은 사실 등이 언론 보도를 통해 폭로된 이후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독립과 권력분립 원칙에 반한다며 출석을 거부했습니다. 대법원장의 출석 요구를 주도한 민주당 소속 리처드 더빈(Richard Durbin) 상원의원은 과거에도 재판과 무관한 사안에서는 법관이 국회에 출석해 증언한 사례가 있다며 로버츠 대법원장의 출석 거부를 비판했지만, 그럼에도 소환장 강제 집행 등의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습니다.
■ 미국 사례에 대한 결론 요약
- 미국에서도 국회가 재판과 관련해 현직 법관의 출석을 요구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 연방 단위에서는 매카시 시대에 2번의 사례가 있었는데, 현직 법관들은 모두 출석을 거부했다. 재판과 관련된 출석 요구는 사법부의 독립과 권력분립 원칙 위반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 주 단위에서는 1건이 알려져 있는데, 이 역시 주 의회 소환장이 권력분립 조항 위반이라는 이유로 무효화되었다.
- 재판과 관련되지 않은 국회 출석 요구는 몇 차례 있었고, 현직 법관들이 출석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023년에는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이 권력분립 원칙 위반 우려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출석을 거부했다.
■ 재판과 관련한 대법원장 출석 요구, 국제 사회는 어떻게 평가할까?
이번에 국회 청문회 출석 요구를 받은 법관 중 한 명인 권영준 대법관은 지난 4월 미국 연방대법원을 방문해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을 만났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민자 강제 추방 집행정지 결정과 관련해 미국 법원을 거세게 비판하고 있던 와중에 이뤄진 만남이었습니다. 권영준 대법관은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 이승만 전 대통령이 법원 판결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자 김병로 전 대법원장이 "이의 있으면 항소하시오."라고 말한 일화를 소개했다고 합니다. 약 1달 뒤, 권영준 대법관은 자신이 관여한 판결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국회로부터 청문회 출석 요구를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권영준 대법관에게 위로를 건넬 차례가 된 것일까요? 한국에 대한 국제적 주목도가 크게 상승한 지금, 재판과 관련해 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출석을 요구한 우리 국회의 선택을 국제 사회가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해집니다.
(* 이 글은 쓴 임찬종 SBS 법조전문기자는 미국 Washington D.C. 변호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 John DiPippa, "Your Honor, You Are Hereby Commanded to Appear...": When a Legislative Committee Subpoenas a Sitting Judge, The University of Memphis Law Review Vol 47 Book 4, 1193-1206 (2016)
- Todd Peterson, "Congressional Investigations of Federal Judges." 90 Iowa Law Review 1-66 (2004)
[관련 조문]
■ 국회법
제65조(청문회) ① 위원회(소위원회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는 중요한 안건의 심사와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에 필요한 경우 증인ㆍ감정인ㆍ참고인으로부터 증언ㆍ진술을 청취하고 증거를 채택하기 위하여 위원회 의결로 청문회를 열 수 있다.
■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8조(감사 또는 조사의 한계) 감사 또는 조사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訴追)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아니 된다.